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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Motivation Monday - 생각²

경쟁.

28 Sep. 20.
written by Jang D.S.
No. 40M20


'추장관 아들 사태'가 낳은 논쟁.

지난 글 "때 아닌 카투사 논란"에서 추장관 아들 사태를 카투사 예비역의 입장에서 간단하게 해석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미 육군 규정 600-2(Army in Korea Regulation 600-2, AR600-2)"까지 함께 살펴 봤죠.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세 가지 주요 논점 모두 '청탁은 가능할 것'이라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이를 결정하는 건 온전히 군 간부의 몫이었고, 바람직하게도 간부는 대부분의 청탁을 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탈영 무마 의혹을 제외한 청탁을 모두 거절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아직도 사그라들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병역 이슈'를 파고들었기 때문이죠. 또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줄어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20대, 특히 20대 남성들을 완전히 내친 듯한 발언을 이어 가기도 했죠. 게다가 '공정'과 '정의' 같은 가치를 줄곧 내세워 온 제19대 정부의 방향과 대치되는 행보를 보였기에, 파장은 더욱 컸습니다. 여당 모 의원은 "카카오톡으로 휴가 신청이 가능하다,"는 해괴한 소리를 하며, 예비역과 현역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죠. 뿐만 아니라, 국방부에서 나서서 추장관을 옹호하려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면서, '추방부'라는 해괴한 조롱 섞인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특히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감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커졌습니다. 가령,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는 추장관이 더 밉겠죠. 그래서 "엄마가 추○○가 아니라 미안해," 같은 캐치 프레이즈를 들어 릴레이 운동을 하기도 했죠. 최근 들어 불거진 이슈, 본질적인 문제를 파헤쳐 볼까요?

 

무한 경쟁 사회 속 감성.

'경쟁'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높은 확률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을 겁니다. 마치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 같다고, 공격적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경쟁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택한 사회에서 경쟁은 필수적이죠.

 

하지만, 여기에 감성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꽤 어려운 상황이 펼쳐집니다. 가령, 초등학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논리로 접근해 보도록 하죠. 운동회 달리기를 하는데, 한 친구가 넘어졌다고 가정해 볼까요? 대개 '모범 답안'이라고 불리는 내용을 살펴 보면, 앞서 뛰어 가던 친구가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워 주고, 함께 결승선을 통과하는 식이죠. 잘못된 행동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경쟁의 가치를 져버린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운동회는 꽤 간단한 상황이니, 공부를 해서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려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볼까요?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의 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 못 하는 친구를 위해서 함께 하는 게 옳다? 논리가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하죠? 반대로,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잘 하는 분야가 있기 때문에, 좋은 학교란 것 없이 급을 없애자? 이 내용도 많이 이상합니다. 이게 바로 이성의 영역에 감성이 개입한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의 달리기는 인생에서 큰 영향을 주지는 않죠. 때문에, 친구를 일으켜 세워 주고, 1등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큰 손해가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성장할수록 점점 한 번의 선택이 더 큰 결과를 빚어냅니다. 고등학생 때 공부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대학교로 진학할 수 없겠죠. 그럼, 그 뒤로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대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석사 과정을 밟거나, 박사 과정까지 이수하거나, 학사 졸업 후 바로 취업하거나, 또는 바로 창업을 시작할 수도 있겠죠. 저마다의 선택은 모두 경쟁의 과정이고, 돌이키기 쉽지 않은 비가역적 선택입니다.

 

이런 선택의 과정을 통해 경쟁하며 살아 가는 사회 속에서, '감성'은 달콤한 제안을 해 주죠. '평등'과 같은 허황된 가치를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같아야 해! 그러지 못한 사회의 탓이야!"
개인의 잘못된 선택마저 사회의 탓으로 돌려 버리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꼬임에 빠지게 하죠. 물론, 사회의 탓도 전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개인의 실수마저 '괜찮다,'거나 '모두 사회의 탓이다,'고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평등이 있는가?

평등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등은 '기회의 평등'입니다. 결코, 결과를 짜맞추는 게 공정이고, 정의고, 평등일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적절한 조건만 맞춘다면 일류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누구나 적절한 조건만 맞춘다면 일류 회사에 입사할 수 있다? 모두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 받은 겁니다.

 

다만, '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일류 대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면, '공인 어학 성적이 모자라서' 일류 회사에 입사할 수 없다면, 평등이 없어진 걸까요?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한 거죠. 전교 1등인 학생이 하루 10시간 공부할 때, PC방에서 노느라 공부를 1시간 밖에 못 해서 일류 대학교에 떨어졌다면, 평등하지 못한 건가요? 과 수석인 학생이 하루 10시간 공부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를 3시간 밖에 못 해서 학점이 떨어졌다면, 평등하지 못한 건가요?

 

우리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결과의 평등을 외치기 전에, 경쟁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쟁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회의 평등을 없애 버리면서 '공정', '정의', '평등' 따위의 헛소리를 늘어 놓는 사람에게서 깨어나는 게 시급해 보입니다.

 

Reference.

1) Jang, D.S.

더보기

Figure 1. UFG 17. USFK Base Defense Exercise.

 

Copyright 2020. Jang D.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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